본격적으로 냉동배아 이식을 준비하면서 병원에 방문한 날, 나는 아르기닌 수액을 맞았다.
수액이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약 30분 정도였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막상 병원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고 있으니 생각보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처음에는 가장 먼저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냉동배아 이식 전에 아르기닌 수액은 왜 맞는 걸까?”
운동하는 사람들이 물에 타서 먹는 아르기닌은 들어봤지만, 시험관 시술과 아르기닌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아르기닌 수액이란?
아르기닌은 우리 몸에서도 사용되는 아미노산 중 하나다.
특히 L-아르기닌은 산화질소(NO, Nitric Oxide)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로 사용된다.
산화질소는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류를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그래서 아르기닌을 이야기할 때 흔히 ‘혈액순환’이나 ‘혈류 개선’이라는 표현이 함께 등장한다.
운동 전에 먹는 아르기닌 역시 기본적인 원리는 이와 비슷하다.
다만 아르기닌 자체가 카페인처럼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확 올려주는 성분이라기보다, 산화질소 생성과 혈류에 관여하는 아미노산으로 이해하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하다.
냉동배아 이식 전 아르기닌 수액을 맞는 이유
그렇다면 시험관이나 냉동배아 이식에서 아르기닌 수액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아가 착상하기 위해서는 배아의 상태도 중요하지만, 배아를 받아들이는 자궁내막 환경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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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난임 치료에서는 아르기닌의 혈류 관련 작용을 이용해 자궁으로 가는 혈류를 원활하게 하고 자궁내막 환경을 보조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쉽게 비유하면,
배아가 머물 공간이 자궁내막이라면, 혈류는 그 공간으로 산소와 영양을 전달하는 통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아르기닌은 이 통로의 혈류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르기닌 수액을 맞으면 자궁내막이 두꺼워질까?
이 부분은 조금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아르기닌을 사용한다고 해서 자궁내막이 반드시 두꺼워지거나 착상률이 무조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 소규모 연구에서는 L-아르기닌을 사용했을 때 자궁 혈류 저항이나 자궁내막 상태가 개선된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반복 착상 실패 여성에게 경구 L-아르기닌을 사용한 연구에서 자궁동맥 혈류 저항과 임신 결과가 개선됐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하지만 연구 규모가 아직 제한적이고, 경구 아르기닌 연구 결과를 병원에서 맞는 아르기닌 수액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따라서 아르기닌 수액은 냉동배아 이식 성공을 보장하는 치료라기보다 병원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는 보조적인 치료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운동할 때 먹는 아르기닌과 같은 성분일까?
나 역시 이 부분이 궁금했다.
운동 전 물에 타 먹는 아르기닌 제품과 병원에서 사용하는 아르기닌은 기본적으로 L-아르기닌이라는 같은 아미노산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사용하는 목적은 다르다.
운동용 아르기닌은 운동 중 혈류나 이른바 ‘펌핑감’을 기대하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난임 치료에서 아르기닌을 사용할 때는 자궁과 자궁내막으로 가는 혈류 환경을 보조하려는 목적에 더 가깝다.
또한 먹는 영양제와 정맥으로 투여하는 수액은 투여 방식과 용량, 흡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같은 제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특히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면 운동용 아르기닌 영양제를 임의로 추가하기보다는 먼저 난임병원 의료진에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르기닌 수액을 맞으면서 느낀 점
나는 아르기닌 수액이 들어가는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잘 되었으면…”
시험관을 하다 보면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다.
진료를 기다리고, 피를 뽑고, 주사를 맞고, 수액을 맞고, 또 다음 결과를 기다린다.
수액 한 병을 맞는 30분도 평소 같으면 금방 지나갈 시간이지만, 냉동배아 이식을 앞두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수액이 다 들어간 뒤에는 개인적으로 몸이 살짝 따뜻해진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다만 이것이 아르기닌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사람마다 느끼는 반응도 다를 수 있다.
아르기닌 투여 후 불편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혼자 참기보다는 바로 의료진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아르기닌 수액, 결국은 이식 준비 과정 중 하나
사실 아르기닌 수액 한 병이 냉동배아 이식 결과를 결정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준비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병원에서 나를 위해 하나씩 준비해 주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험관 과정에서는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정말 많다.
배아가 어떻게 자랄지, 착상이 될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오히려 병원에서 안내받은 약을 잘 사용하고, 정해진 날짜에 진료를 받고, 하나씩 준비해 나가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같은 냉동배아 이식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도 수액 맞는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면 잠시 그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순간 역시 나중에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
우리 모두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잘 가보자.